안녕하세요. 이민수 변호사입니다.
이하 정규과정으로 설계된 로스쿨 민사법 교육과정에 비추어 민사법 공부방법에 대해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I. 로스쿨 민사법 교육과정
(1) 각 학교,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는 각 교수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들은 있으나, 대체로 아래와 같은 시간 흐름에 따라 민사법 과목이 배치된다.
학기 | 1-1 | 1-2 | 2-1 | 2-2 | 3-1 | 3-2 |
민법 | 계약법1 법정채권법 |
계약법2 물권법 |
기록 및 연습 | |||
민법1 민법2 |
민법3 민법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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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법 | 민사소송법1 | 민사소송법2 | 민사집행법 | |||
상법 | 상법총론 | 회사법 | 어음수표 / 보험 / 해상 |
(2) 민사소송법 및 상법 분야 과목들의 내용이나 배치는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고, 학교 내에서 일정한 관행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특별히 설명할 것은 없다.
(3)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민법 분야이다. 계약법 1, 2 과목은 (i) 민법총칙, (ii) 채권총론, (iii) 법정채권법을 제외한 채권각론(더 세분하면 계약총론과 계약각론)의 내용들을 적당한 단위로 잘라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로 이어 붙이는 형태로 구성된다. 법정채권법과 물권법의 경우 독자성이 비교적 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계약법과 '병행'하여 진행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II. 로스쿨 민법 교육과정이 내포한 비판의식
(1) 로스쿨 민법 교육과정은 기존 법과대학의 민법 교육과정의 '개정판'이라 볼 수 있다. 과거 교육과정은 우리 민법이 취하고 있는 '판덱텐' 체계에 따라 조문 순서가 안내하는 대로 교육내용을 배치하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권법을 빼고 채권 관련법을 그와 같이 배치하였다고 하여야 할 것이지만.
(2) 아무튼 위와 같은 체계에 대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쟁점이 가장 먼저 주어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런 주장을 요약하면 "더 중요한 것들이 잔뜩 있는데 태아의 권리능력 취득시기를 갖고 씨름시키는 것이 맞느냐?"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런 주장은 영미법계의 전통인 로스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영미법계의 체계, 즉 계약법(Contract Law)를 앞에 세우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까지 나아가게 된다. 로스쿨과 함께 계약법도 함께 수입된 셈이다.
(4) 판덱텐 체계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로는 법명제들의 중첩되는 요소들을 묶어 그 중첩되는 법명제에 '총칙/총론'이라 이름붙이고, 중첩되는 부분 외의 것들에는 '각칙/각론'이라 이름붙여 평행하게 법명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 꼽힌다. 그와 같은 구조는 추상성(그에 따른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데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로스쿨 민법 교육과정 체제가 '판덱텐 체계를 뒤엎는' 식으로 구성되는 것을 정당화한 것은 그와 같은 판덱텐 체계의 구성이 "구체에서 일반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일반적 인지양식과 상이하다는 점이다. 추상명제는 구체적 사실에 대해 충분히 수집한 뒤에야 세워질 수 있는 것인 바, 충분한 구체성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상성을 고민케 하자는 것이라고나 할까?
III. 로스쿨 민법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그러나 '판덱텐 체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과연 충분한 정도로 논증을 거쳐 형성된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가 인스티투치오넨 체계는 뭐가 어떻게 다른가? 그러니까 무엇이 '판덱텐 체계'의 특징인가?
(2) 지식이 일천하여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으나, 해당 법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여부와 그 법체계가 개별 규정이 어떻게 서술될 것인지를 요구하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의 위 세 가지 질문 사이에는 직접적인 논리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판덱텐 체계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영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약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다는 데에서 그와 같은 점이 명백히 확인된다. 판덱텐 체계의 반대는 인스티투치오넨 체계로 알려져 있는데, 갑자기 계약법이 왜 등장하게 되는 것인가?
(3) 결론적으로 우리는 '법'은 '어떤 방법론'에 의존되어 전개되는 '어떤 영역'에 대한 학문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여야 "법학 교육(그리고 공부)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IV. 법학 교육 - 법 교육과의 대비에 주목하여
(1) 결론에 이르기에 앞서 '법학 교육'이라는 용어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법교육지원법'에 따르면 "법교육"이란 " 법에 관한 지식과 기능, 법의 형성과정, 법의 체계, 법의 원리 및 가치 등의 제공을 통하여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법적 이해능력, 합리적 사고능력, 긍정적 참여의식, 질서의식, 헌법적 가치관 등을 함양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과 관련된 일체의 교육"을 의미한다.
(2) 그 서술만 놓고 보면 법학 교육과 법교육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위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민주)시민으로서'라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권력'이 긍정하고 있는 법적 상태를 알게 함으로써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취지이다.
(3) '법학'과 '법'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려면, '수학'과 '수'의 관계를 참고할 수 있다. '수'는 우리가 사회에서 이용하고 있는 어떠한 의미에서든 양(Volume)적인 무엇인가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수'를 잘 안다는 것은 수치를 잘 다루는 것, 곧 산술을 잘 함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어떠한 고등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반면에 수학은 위와 같은 수치화 작업이 갖는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말한다. 수학을 한다는 것은 3 + 2 가 2 + 3과 같다는 것을 분석하고, a와 -a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 즉 수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해체하고 추상화하는 등의 행동을 하여 수의 본질을 찾아나가는 것이 된다.
(4)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결국 법학이란 법을 해체하고 분석하며 추상화하거나 구체에 대입시켜 보는 등의 작업을 통해 법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법학은 법의 어떠한 결론들을 잘 알게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보다 과정에 큰 의미가 부여되는 동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법'은 '아는 것'이지만 '법학'은 '하는 것'이다.
V. 결론 - 로스쿨에서의 법학 교육(공부) 방법에 대한 제언
(1) 위와 같은 설명은 '결론만 외우는 암기식 공부를 지양하고 이해식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시시한 격언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이다.
(2) '이해식 공부'는 '판례를 볼 때 사실관계와 논거까지 살펴보라' 또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집요하게 가져가라'는 제언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왜' 이해식 공부를 하여야 하는지 그 이유에 있다. 지금 당장 만나는 법적 쟁점에서 펼쳐지는 법리 대결 또는 논쟁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배경 공리로 사용되는 법원칙(원리)와 정리(Theorem)으로 역할하는 수많은 법명제들을 소위 '리걸마인드'라 불리는 논리 전개 방식과 삼단논법을 필두로 한 연역추론을 가지고서 다루는 작업은 짧게는 3년 길게는 평생 여러분을 따라다니게 된다.
(3)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첫 걸음부터 '법률가처럼' 사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있다. 새로운 개념(쟁점)이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였을 때, (i) 일정한 사회적 사실관계에서 법적으로 의미있는 부분만 남기고서는, (ii) 그와 관련하여 법원칙의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iii) 규정의 문언은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지 분석하고, (iv) 관계되는 다른 개념들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떠올리며, 예상되는 정과 반의 입장과 그 논거들을 생각하여 결국 어떤 결론(검토의견)이 도출되어야 하는지 제시하려고 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말이다.
(4) 따라서 중요한 것은 법학 교육을 이끄는 자(교과서 포함)가 그런 길을 잘 인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그와 같은 예민한 자세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라 할 것이고, 기타 여남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내게 누군가 법학교과서를 딱 한 권만 추천해달라 요청한다면, 나는 당연히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 시리즈를 추천할 것이다)
이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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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제8회 변호사시험)
(現) 민사법교육연구소 대표
(現) 합격의법학원 변호사시험 민법 전속강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공 (법학전문석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학사)